참여마당

방장스님 법문

제목 화엄법계 탑 광명이 미래제로 빛날 것이니
작성일 2017-09-04 조회수 904 작성자 원당암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화엄 법계 탑 광명이 미래제로 빛날 것이니   

                                                                                海印叢林方丈 碧山源覺

 

광상소조함환희(光相所照咸歡喜)여
중생유고실제멸(衆生有苦悉除滅)이로다.

광명이 비치는 곳에 넘치는 환희심이여!
중생의 모든 고통을 일시에 제거함이로다.

오늘은 해인사 화엄 법계 탑 낙성 및 오천 비로자나불 봉안식을 거행하는

성스러운 날입니다. 시방세계는 광명으로 가득하고 그 광명의 빛은 이 자리에

모인 사부대중들에게 골고루 차별 없이 평등하게 비추어 줍니다. 그

광명으로 인하여 동참한 모든 대중들은 이 공덕으로 마음에는 환희심으로

가득하고 개인사의 괴로움과 가정사의 어려움이 일시에 소멸될 것이라고

비로자나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축원을 내려 주십니다.

인도 말인 비로자나는 한문으로 번역하면 광명변조(光明遍照)라고 합니다.

광명을 두루 비춘다는 의미입니다. 광명이란 무명(無明)을 밝힐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살아납니다. 무명이란 다시 말하면  어두움입니다. 그 어두움은

마음의 어두움을 말합니다. 마음이 어두운 것은 탐진치(貪瞋痴)가 그 원인

입니다.  무명은 우리가 가진 탐심(貪心) 즉 탐내는 마음, 진심(嗔心) 즉

화내는 마음, 치심(癡心) 즉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생깁니다. 

탐심 진심 치심은 언뜻 보면 나눠져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뿌리는 한

가지입니다.  좋은 물건을 보고 탐내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중생계에
살면서 갖고 싶다고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할 때  이것으로 인하여 분노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내 능력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자 하는 생각을 일으킨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백화점에 갔을 때 부모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지도 않고

아이들은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쓴다면 이때
탐진치 삼독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라고 할 것입니다. 이럴 때 아이의 탐진치

삼독을 끊어줄 수 있도록 부모의 지혜와 자비가 필요한 것처럼 중생들의

탐진치 삼독을 끊어주기 위해 불보살의 지혜와 자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반야지혜라는 깨달음을 주기위하여 선사스님들은

할과 그리고 죽비로 경책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탐진치는 각각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연결된 연기적

(緣起的)인 관계입니다.  서로 물고 물리는 탐진치가 한 덩어리가 될 때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삼독(三毒)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이 삼독으로 인하여 모든 고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탐진치 라는

삼독이 주는 무명에서 벗어나고자 우리는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고 경전을 읽고 기도를 하고 주력을 하고 절 수행을 합니다. 더불어

보살행도 해야 합니다.  보살행의 방편으로 해인사 화엄 법계 탑 불사에

기꺼이 동참한 것입니다. 그 불사 안에는 보시 공덕이 있고 그 공덕으로

무명에서 벗어나 지혜의 광명을 얻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무명을 밝히기 위한 광명의 전당이 바로 대적광전이요 비로전 입니다.

해동 화엄종 초조인 의상조사의 제자인 순응 이정 양대 화상께서 해인사를

창건한 것도 비로자나불의 광명으로 신라백성들의 무명을 밝혀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현재 비로전에는 두 좌의 비로자나불이 함께 광명을

비추고 있습니다. 큰 법당 대적광전에도 가운데 주불은 비로자나불입니다. 

해인사는 그야말로 무명을 밝히는 광명의 도량인 것입니다.

현재의 비로전 자리에 예전에는 진상전(眞常殿)이라는 법당이 있었습니다.
17세기 조선중기 때 활동했던 최흥원(崔興遠)선생의 문집인 백불암집

(百弗庵集)에 의하면 그 법당 안에 좌우로 금탑 두 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진상전을 금탑전(金塔殿)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금으로 만든 두 탑 역시 광명을 비추기 위하여 조성한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의 광명을 대신하여 두 금탑이 찬연히 시방의 중생계를

비추었을 것입니다. 오늘 금탑전의 두 금탑을 대신하여 이제 장엄한

화엄 법계 탑이 완성되었습니다.  화엄 법계 탑 안에는 오천불의

비로자나불을 함께 모셨습니다.
이제 화엄 법계 탑이 곧 금당이요 금당이 곧 탑이 되어 그 광명을

미래제로 영원히 이어갈 것입니다. 동참자들은 불탑조성공덕으로

현세와 내세에 무량대복을 받을 것이며 또 기도 성취와 수행성취라는

큰 공덕을 지은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광상소조함환희 중생유고실제멸’ 이라는 게송은 화엄경

‘비로자나품’에 나옵니다. 화엄종찰인 해인사 큰법당의 대적광전에 달려있는

주련 여섯 개 가운데 마지막 두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 시작은 불신보방

대광명(佛身普放大光明)입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의대광명이 온 천지에 비치니,

색상무변극청정(色相無邊極淸淨) 색과 모양이 가없이 청정하네.

여운충만일체토(如雲充滿一切土)구름이 온 땅위에 충만하듯이

처처칭양불공덕(處處稱揚佛功德) 곳곳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네”라고

하였습니다. 그 광명을 통하여 우리들의 몸과 마음이 본래 청정함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광명은 무명을 타파하는 것이요 무명을 타파한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광명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내 속에 갖추어져 있는 광명을 자성의

지혜광명이라고 부릅니다. 육조혜능선사는 오조홍인선사의 법문을

듣고서 “하기자성본자구족(何其自性本自具足) 내 자성이 본래 저절로

갖추어져 있는 것을 내 어찌 알았으랴!” 고 하면서 그 자성광명을 깨달은

후 이렇게 찬탄하고 환희하셨던 것입니다. 

(오조홍인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후에 남방으로 가서 법성사(法性寺)의

인종(印宗)법사를 만나 다시 삭발을 합니다. 육조혜능선사의 머리카락을

보관한 팔각칠층의 전탑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현재 광동성 광주

(廣州)땅  광효사(光孝寺)의 예발탑(예髮塔)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예발탑

자리가 바로 그
명한 ‘육조풍번’ 화두의 현장인 것입니다. 바람이 흔들리는가 깃발이

흔들리는가를 놓고서 다투고 있던 두 스님에게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며 오직 당신들의 마음이 흔들릴 뿐이라는

답변으로 그 논쟁을 멈추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배운 것도 아니요 경전에

해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반야지혜의 눈이 열릴 때만이 할 수 있는

답변인 것입니다.) 

반야지혜는 자성청정심에서 나옵니다. 중생심인 무명번뇌와 삼독 오욕을

끊고서 자성청정심을 회복한다면 일월보다도 더 밝게 시방삼세를 훤히

비칠 수 있는 지혜광명이 솟아나게 됩니다. 이것이 곧 반야의 지혜이며

또 자성광명인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삿됨이나 미(迷)함이 생기지 않고

생각 생각에 사견이 없어져 탐애와 집착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비는 공평하게 내리지만 그릇의 크기에 따라 빗물의 고이는 양은
다르듯이 광명의 빛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비추지만 받아들이는 빛의 양은 내
마음의 크기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많은 광명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복을 짓고 또 정진해야 합니다.  세상살이는

쉽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쉽다고 하거나 어렵다고 하는 것은 모두 마음의

차이에서 일어납니다. 그러기 위해서 수행을 해야 합니다. 참선 간경 주력

염불 사경 절하기 보살행 가운데 자기에게 맞는 수행법을 선택하여 매일매일

실천하는 자기만의 수행법(修行法)을 생활화한다면 우리들의 마음그릇은

점점 커지고 또 넓어질 것입니다.   

무명을 걷어내고 광명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2006년 비로전을 다시 지었고

 2017년 화엄 법계 탑까지 낙성하게 되었으니 붓다가야에서 이루어진 부처님의
깨달음은 2600년이 지난 오늘 가야산으로 광명의 역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로자나 부처님과 팔만대장경 그리고 화엄 법계 탑이 새로운 삼보로
빛나는 해동제일가람 해인사를 잘 보존하여 후손들의 대복전과 수행

공간으로서 영원히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산형절어천하(山形絶於天下)하고
지덕척어해동(地德隻於海東)이로다
가야산의 형상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나고
해인사의  지덕은 해동에서 가장으뜸이로다.

                                                                      불기2561(2017)년 7월17일(윤 5.24) 

다음글다음글 출가 50주년 법어
이전글다음글 지관대종사 사리탑비 낙성법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