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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스님 법문

제목 정유년 동안거 해제 법어
작성일 2018-05-24 조회수 817 작성자 원당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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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酉年 冬安居 解制 法語

 

海印叢林 方丈 碧山源覺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住杖子)를 세 번 치시고>

 

 

무위한도인 無爲閑道人이여

재처무종적  在處無종跡이로다.

경행성색리 經行聲色裏

성색외위의 聲色外威儀로다.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이여.

어디에 있으나 그 자취가 없도다.

가거나 오거나 소리나 빛깔 속에 있어도

소리나 빛깔 밖의 위의로다.

 

귀종지상(歸宗智常)선사에게 젊은 납자가 해제인사를 오니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는가?”

여러지방으로 오미선(五味禪)을 배우려 갑니다.”

제방(諸方)에는 오미선이 있고 총림에는 일미선이 있다.

일미선(一味禪)은 제대로 익혔느냐?”

총림의 일미선은 어떤 것입니까?”

 

당나라 귀종선사는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을 이었으며 강서성 여산(廬山) 귀종사를 중심으로 선법을 펼쳤습니다. 선사의 신체는 보통사람들과 매우 달랐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왕이 될 상호라고 자꾸 수군거리자 눈알에 독을 쏘여 일부러 눈동자를 붉게 만들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뒤에 사람들은 적안(赤眼)귀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강주(江州)땅의 자사(刺史)인 이발(李渤)거사가 선사를 찾아 왔습니다. 자사는

얼마나 해박했던지 별명이 만권거사였습니다. 제자백가는 물론 유··도 등 모든

분야에서 만권의 책을 독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권거사가 불경을 읽다가 수미입개자(須彌入芥子)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는다는 말에 막혀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해 찾아

온 것입니다. 이에 귀종선사는 당신의 머리는 야자(椰子)열매만 한데 만권의 책이 어디에 들어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던 것입니다. 이 말에 거사는 큰 깨침을 얻었습니다. 이를

인연으로 뒷날 마조(馬祖)의 수제자인 서당지장(西堂智藏)의 비문을 직접 짓기에 이르렀습니다. 서당지장 선사는 해동 조계종의 종조인 신라 도의(道義)국사의 스승이 됩니다.

해제를 앞두고 귀종선사께 어떤 젊은 납승이 찾아와 일미선과 오미선에 대한 문답을 주고 받았습니다. 일미선은 목적지를 곧장 가르키는 것이요. 오미선은 목적지에 가기 위한

경유지를 함께 안내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일미선은 직절지(直截智)요 오미선은 방편지(方便智)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중생을 이롭게 함에 법도가 제대로 서 있는 것을 일미선이라 하며 때에 따라 적절한 방편을 사용하는 것이 오미선입니다. 따라서 일미선이 없는 오미선은 삿된 도가 되는 것입니다. 일미선을 통해 오미선으로 들어가야 자신과 타인을 모두 이익 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으로 여러 가지 모양의 물건을 만들더라도 그 물건은 모두 금인 것처럼 설사 일미선이

모양을 바꾸면서 오미선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일미선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든 법은 동일한 본체이지만 교묘(巧妙)한 여러 가지 상()들이 모여 차별된 모습을

만들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에 일체가 구비되어 있으므로 일체는 다시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일미선을 통해 오미선을 성취하고 오미선을 통해 일미선은 모두에게 회향되는

것입니다.

 

일미선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본분사를 드러냅니다. 오미선은 여러가지 방편으로 우회하여 본분사로 나아가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일미선도 필요하지만 오미선도 필요한 법입니다.

일미선에 집착하면 일미선에 묶이고 오미선에 집착하면 오미선에 묶입니다. 그렇다고

일미선 없이 오미선에만 집착한다면 이것은 방편망어(方便妄語)가 되고 말 것입니다.

또 반대로 일미선에만 집착한다면 그 일미선마저 제대로 펼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당나라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는 내가 만약 일방적으로 근본적인 가르침만

들어 보인다면 법당 앞의 풀은 한 길의 높이로 자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전체가 본래 반야의 광명이지만 그 광명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때 반야의 소식은 어디에서 얻을

것인가?”라는 말씀을 남겼던 것입니다.

 

즉 근본적인 경지에 대하여 방편을 전혀 허용하지 않고 오로지 철저하게 본분의 영역만

고수한다면 법당 앞에 풀이 한 길 높이로 자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은 오미선 없이 일미선만 있다면 배우기 위하여 오고가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결국 법당 앞에 풀이 한 길이나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살고 있는 사람마저 떠나게 되어 막자란 풀마저 뽑을

사람조차 없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남송 때 임제종 양기파의 경산지우(徑山智愚) 선사는 만약 법에 따라 곧이 곧 대로 행한다면 법당 앞에 풀이 한 길 높이로 자랄 뿐 아니라 아무도 이 암자를 보살피지 않을까봐 염려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송대 임제종 황룡파의 장령수탁(長靈守卓)선사 역시 법에 따라 험준한 종지만 행한다면 법당 앞에

풀이 한 길 높이로 자랄 테니 이제 어쩔 수 없이 항아리 파편으로 벼루를 만들어 팔듯이

하여 노파심을 친절하게 모두에게 베풀어 그대들이 본분의 곡조에 화답하도록 하겠다.”

고 하신 것입니다.

 

일미선은 결제요 오미선은 해제입니다. 왜냐하면 결제 때 닦은 일미선으로 해제 때 오미선으로 회향하기 때문입니다. 일없이 마을과 마을사이를 쏘다니거나 이 산에서 겨울 한 철을 지냈으니 이제 저 산에서 여름 한 철을 지내야겠다고 한다면 일미선은 고사하고 오미선

마저 잃어버릴 것입니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과 공양물이 많은 곳만 찾아다니면서 그 지방은 참으로 지내기가 좋다라고 말한다면 이것 역시 일미선은 고사하고 오미선

마저 잃어버린 것입니다. 남의 쌀 한 되를 얻으려고 하다가 나의 한 철 양식을 잃게 될 것이니 이는 오미선만 찾다가 일미선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만행이란 오미선을 통하여 일미선으로 들어가는 일이요 일미선을 오미선에 회향하는 일입니다. 해제하여 이 총림을 떠나 저 총림으로 가고 이 산중을 떠나 저 산중으로 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설봉의존(雪峰義存)선사는 행각을 통하여 많은 선지식을 참문 한 납자로 유명합니다. 일찍이 세 번이나 투자산 대동선사를 참방하였고 아홉 번이나 동산양개화상을 참문 하였습니다. 이것을 후학들은 삼도투자(三到投子) 구지동산(九至洞山)’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설봉은 일미선을 공부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공양주를 자처하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즉 오미선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귀종선사는 허공을 묶어 주장자를 삼아 천 성현의 정수리 위에서 정병·소반·가락지·비녀를 녹여 한 개의 금덩어리로 만들었고 소·(제호(醍호)를 저어서 한 맛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안목없는 이는 팔만대장경도 만리 너머 있는 흰구름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법문 역시 잠꼬대를 듣는 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일미선이 곧 오미선인 도리를 내 것으로 만들 때 귀종선사의 오미법문을 제대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마침내 오미 뿐만 아니라 그 일미조차도 삼켜버렸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일미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 입니다.

 

귀종일미여연고(歸宗一味如蓮苦)하니

차과총림기후생(蹉過叢林幾後生)

환유불차과자마(還有不蹉過者마)

시출래토로소식(試出來吐露消息)하라

 

귀종의 일미선은 황련과 같이 쓴 맛인지라

총림의 후학들이 지나친 것이 얼마인고?

그렇다면 지나치지 않을 자가 있는가?

만약 있다면 앞으로 나와서 소식을 말해보라.

 

<주장자(住杖子)를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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