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대종사

법어

제목 혜암큰스님 법문
작성일 2024-04-25 조회수 1764 작성자 원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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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절히 공부해 빨리 내마음을 알아야 -

- 행 따르지 않는 앎은 아무 소용 없어요 -


일반 신도들에게 법문을 할 때는 ‘아미타불’을 염하고 나서 법문을 시작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한번 부르면

나고 죽는 큰 죄, 팔백겁의 죄를 녹여 버리는 공덕이 생깁니다. 나무아미타불을

한번 부른 공덕이 이러할 진데 참선의 공덕은 말할 것도 없지요.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게 생기는 좋은 일, 나쁜 일 모두가 자신으로부터 비롯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잊고 사는 것 같아요. 모두가

남의 탓만 하고 있어요. 이는 죄 받을 일, 죽을 일을 만드는 것과 똑 같습니다.

모두가 ‘내 놀음’입니다. 내 마음, 내 공로만큼 받는 것이지 가만있는데

부처님이 복을 지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매일 세끼 밥을 꼭 챙겨 먹으면서도 법문을 듣는 것에는 게으릅니다.

법문을 듣고 앉아 있으면 다 아는 얘기 같거든요. 그러나 행이 따르지 않는 앎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성불하기 전까지는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법문을 밥

먹듯이 듣고 이를 부지런히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법문을 수없이 들어도 돌아서면 잊어 버리는 게 우리

중생들이예요. 아무 일도 없으면 심심해서 무슨 일이라도 일을 만듭니다.

일이 없으면 공연히 걱정스럽고, 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

모두 헛 것인데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죄지을 일을 만들어 냅니다. 육근(六根)이

무사할 때 다시 말해서 여섯 도둑놈이 일이 없을 때가 제일 좋은 때인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요. 그래서 귀 도둑놈, 눈 도둑놈, 코 도둑놈을 만들어

지옥에 가는 일을 만드는 판국입니다. 이래가지고도 도를 닦지 않는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눈 밝은 이가 보면 고생길이나 죽을 길만 일부러 찾아

다니는 것과 같아서 안타까워요.


천지의 은혜보다 귀중한 것이 불·법·승 삼보입니다. 성불할 때까지 이 삼보에

의지해서 쉼 없이 정진해야 합니다. 좋은 법문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말입니다.


나는 일찍이 일본에 건너가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불교서적을 탐독했지요.

그 가운데에서 <선관책진>이라는 책과 일본의 유명한 선승 일휴선사의 어머니가

쓴 유언서를 읽고 나서부터는 도를 닦고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전부터 내게는 화두 비슷한 묘한 의문이 있었는데 ‘눈은 왜 두 개가 앞에만 있는

걸까?’ 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시절 나로 서는 강한 의문이었어요.

그래서 일본 임제종의 유나(維那)로 계시던 서옹스님을 뵙고 <금강경> 한권과

‘참선을 하라’는 말씀을 얻은 뒤 한국으로 왔 습니다.

그때 내 나이 스물다섯 되던 해 였습니다.


그러나 출가의 길은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첫째가 부모님의 결혼 간청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두 번씩이나 선을 봤지만, 남의 처녀한테 못할 짓 하는 것 같아 세 번째 혼담이

나왔을 때에는 출가의 뜻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부모님은 결혼 한 뒤에

출가하면 안 되겠느냐고 더욱 간절히 부탁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어

“비구 스님에게라도 시집 올 여자가 있다면 결혼 하겠습니다”고 말씀드렸죠. 이 말에

두 어른은 며느릿감을 두루 찾아다니시다가 백양사 근처의 어느 절에서 노 비구니

스님이 ‘스님과 결혼할 처녀가 있다’고 한 농담을 들으신 것입니다. 귀가 번쩍

뜨이셨겠지요. 저를 데리고 그곳을 찾아 가셨습니다. 결국 그 노스님과의 인연으로

나는 그 즉시 해인사로 가 출가하게 되었지요. 아무튼 부처님의 인연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가는 길로 쉽게 출가가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일본식으로 ‘하이칼라’를 한 겉모양 때문인지 대중공사를 세 번이나 한 끝에

‘중노릇 할 위인’이 못 된다는 이유로 해인사에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성 이면 감천’임을 믿고 나뭇간이며 공양간 등에서 자고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불 때고, 물 긷고 밥을 하면서 일주일쯤 출가에의 강한 집념을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서옹스님을 다시 만나 나중에 은사가 되신 인곡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출가하고서 맨 처음에 한 것은 공양주 였습니다. 가던 날부터 거의 잠도 못 자며

불구를 닦고, 밥을 지었습니다. 밥 짓는 양도 잘 맞춰 나중에는 쌀 곳간 의 열쇠를

받아 미감의 일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또 신발도 손수 지어 신고 헌옷 한 벌로 밤 새워

공부했습니다. 고된 행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주걱으로 밥을 푸다가 문득 ‘나도 도를

닦으러 왔는데 딴 스님들 공양 준비만 해 주다 시간 다 흘려보내는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옆에 있던 스님한테 “배가 아프니 오늘 아침만 좀 해 주오”

라고 부탁하고는 그 길로 떠났지요.


어렴풋이 백련암 뒤에 환적스님이 공부하던 ‘환적굴’이 있다는 말을 들은 바 있어

무조건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일주일 만에 꼭 도를 깨치겠으며, 그러 지 못할 때는

죽어도 좋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환적굴을 찾지 못하고 대신에 다른

새로운 굴에서 ‘깨달음의 공부’에 들어갔습니다. 굴속에서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육일을 지내고 나니, 귀가 바글바글 울리고 손 발 마디마다 빡빡하더군요.


그렇게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정진하면서 지금까지 사십년 ‘장좌불와’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장좌불와를 하게 된 동기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일주일 만에 도를

깨치겠다’고 마음먹고 매주 한 주일을 새로 시작하고 하다 보니 어느새 사십년을

계속해 장좌불와를 하게 되었을 뿐인게지요.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座臥 語默動靜)에

걸림 없는 공부를 해야 됩니다. 공부는 오래하고 있는 것보다 일도양단해서 간절히

할 때에 힘을 얻고 덕을 보는 것이지, 그저 오래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또 아무리 더 없을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내 마음’을 몰라가지고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물질이 풍부하든 그렇지 못하든 내 본 마음을 모른다면 귀신이

중간에 끼어들어 속이고 다니며 죽을 길로 끌고 갑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나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이것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입니다.


옛 도인의 말씀에, 태어나면 소금 장사밖에 할 일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은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조금치라도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엉뚱한 곳에 가서 행복을 찾으려고 야단이니 큰일입니다.

어서 빨 리 자신의 마음 찾는 공부를 해야지요.


우리가 끌고 다니는 이 몸은 길가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줍듯이 주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몸뚱이는 분명히 나의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닙니다.

이 몸을 천번, 만번 소중히해 다시 태어나도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살아 보아 야 괴롭기만 하지, 뭐 좋은 일이 있습니까. 밥먹고, 세수하고, 화장실가고,

남 을 돕거나 해치는 일, 뭐 그런거지, 그밖에 다른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길에서 몸을 주웠듯이 몸보다 더 중요한 불법을 만나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보물이 있는데 엉뚱하게 밖에서 구하려고 하니 어리석기 짝이 없 는 일입니다.


콧구멍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 있고, 귓구멍 속에 한량없는 부처님 나라가 다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깨치고 보면 시방세계가 모두 나로부터 나오고, 하늘 과 땅,

해와 달 역시 내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내 마음

자리에서 보면 수없이 스러졌다 일어서는 바다의 파도만도 못한 것입니다.

경전에 있는 말을 바로 알아야지 행여 짐작으로 안다면, 이는 크게 어긋나는 일입니다.

도는 모양이 없는 것이어서 물건과 같이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천 분이 나타나신다 해도 나의 일은 모릅니다.

자기 마음은 오로지 자기가 깨달아 써 먹어야지요.


팔만대장경을 다 왼다고 하더라도 ‘이 뭐꼬?’ 하며 참선하는 사람을 당하 지 못합니다.

도라는 것은 오직 내가 깨닫는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는 말이며 참선보다 더 큰

기도는 없습니다. 참선은 곧 활구(活句)요, 정법이요, 부처입니다. 도 앞에서는 부처라는

글자도 보잘 것 없습니다. 부처의 불(佛) 자를 몰라도 부처님이 참선을 해서 부처가

되었다는, 이 뜻을 아는 사람은 그대로 ‘살 길’을 만난 겁니다.


사람의 몸을 받았으니 참선 공부를 해 볼만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하찮은 일 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이러한 법을 만났다면 이보다 복이 많은 사람은 없겠지요. 이러한 법을

안다면 한 나라의 대통령일지라도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마음자리에서 보면 모든

인간관계가 터럭끝만도 못한 것인데 사람들은 ‘내 아들’, ‘내 딸’ 하면서 집착합니다.

이 집착을 버려야 병이 고쳐집니다.


사람이나 귀신이나 자식에게 집착하는 버릇은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부처님 시대에

어느 집에서든 아이만 낳으면 잡아다가 자기 새끼에게 먹이는 귀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귀신의 버릇을 고치려고 그가 제일 사랑하고 아끼는

막내아들을 빼앗아 왔습니다. 귀신은 애가 타서 부처님을 찾아와 서는 “내 막내아들이

없어졌으니 부처님의 도력으로 찾아주십시오”하고 부 탁을 했어요. 그러자 부처님은

“너도 자식을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왜 사람 의 아이를 잡아다가 네 새끼들에게 먹여

남을 슬프게 하느냐? 네가 사랑하는 아들을 만나고 싶거든 이제부터는 사람을 잡아다가

먹이지 말아라”하시며, 바릿대에 담아 두었던 귀신의 막내아들을 내어주셨답니다.

이때부터 귀신은 바릿대 물을 먹고 살았고,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듯이 사람이나 귀신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자기 자식에게 집착하여 죽을 길만

찾아다니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얼핏 보면 부모와 내가 가까운 것 같아도 사실상

멀고 먼 관계입니다. 늘 나를 따라 다니는 내 몸도 내 본성과는 거리가 먼데, 하물며

부모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부모가 생기기 이 전부터, 나아가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부터 우리는 있었어요. 어머니 뱃속 에서 나왔으니 육체로 보아서는 부모와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몸뚱이가 내가 아닌 것을 안다면 부모다,

자식이다 하여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중생들은 내 부모,

내 자식에 끄달려 죽을 길만 찾아다니니, 부처님 법 아니면 어디서 이러한 바른 법을

깨우치겠습니까? 대구 관음사에 법문을 하러 갔다가 주지실에 잠깐 들렀는데,

그 방의 벽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걸려 있어요.


‘삼생원가(三生怨家)

윤회본인(輪廻本因)’


이글은 효봉스님이 예전에 동화사 조실로 계실 때 써 놓으신 여러 현판 가운 데

하나입니다. 효봉스님의 손상좌인 관음사 주지스님의 말이 현판식을 하려 고 현판을

찾아보니 유독 이것만 없어졌다는 겁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더니 뒷방을

고치려고 마루를 뜯다가 마룻장 밑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비로소 명언이 빛을 본 셈이지요.


이 글의 뜻은 살아서 복짓는 일이 전생, 금생, 후생이라는 삼생의 원수요, 윤회의

근본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복을 짓고 살아봐야 나고 죽는 씨앗이 되어버려

천상의 불구덩이밖에 못가고, 불구덩이에 가면 도로 지옥에 가지요.

지옥과 천상은 한 집안이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만이 고생이 아닙니다. 우리가 잊고 있어서 그렇지, 나고 죽으러 다니는

고생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뼈마디가 다 녹아들도록 괴롭기 짝 이 없는

것입니다. 경전에 보면 나고 죽을 때의 괴로움이 모두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고 죽은 일이 없는 극락세계가 있는데 왜 사서 그런 고생길을 만듭니까?


중생이 이러한 고통을 받지 않게 하려고 길잡이 하러 나온 이가 바로 성인입니다.

성인은 부처님의 하인노릇을 하려고 이 세상에 나온 거예요. 우리도 이 를 본받아

부처님의 하인노릇을 하려는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부처님이 시 키는 대로만 하면

그대로가 극락이니까요.


현대불교신문 1997-06-25 132 【수행한담】혜암스님<조계종원로회의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