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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스님 법문

제목 병신년 하안거 반결제 법어
작성일 2017-08-30 조회수 620 작성자 원당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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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丙申年 夏安居 半結制 法語

                                                           方丈 碧山 源覺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柱杖子)를 세 번 치시고>


조원일적수(曹源一滴水)여
기개상암위(幾介相暗委)라
개구낭도천(開口浪滔天)하고
무언파몰취(無言波沒嘴)로다
조계의 근원이 되는 물 한 방울이여!
몇 사람이나 그 뜻을 알겠는가?
입을 열면 물결이 하늘까지 넘치고
말이 없으면 파도에 주둥이가 파묻히네.

여하시조원일적수(如何是曹源一滴水)닛고
시조원일적수(是曹源一滴水)니라
조계의 근원이 되는 한 방울의 물이란 어떤 것입니까?
조계의 근원이 되는 물 한방울 바로 그것이니라.

조원일적수(曹源一滴水)화두는 법안문익(法眼文益)선사에게

누군가 물은 것입니다. 법안선사는 이 납자의 질문을 받고는

조금도 가감없이 그대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돌려주는 것은 선사의 또다른

가풍입니다.
『법안록』에도 그런 선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스님이 암자에 살면서 문(門)에 마음 ‘심(心)’자를 써놓고,

창(窓)에도 벽(壁)에도 모두 마음 ‘심(心)’자를 써 두었습니다.

선사는 이것을 보고는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문에는 ‘문’이라고 쓰고, 창에는 ‘창’이라 쓰고, 벽에는 ‘벽’

이라고 쓰면 될텐데!”라고 했던 것입니다.   

어쨋거나 일적수 문답은 외형적으로 같은 말이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같은 말이 아닌 것입니다. 모르고 보면 같은

말이지만 알고보면 다른 말입니다. 그런 까닭에 질문한 납자가

알아차린 것이 아니라 곁에서 듣고 있던 천태덕소(天台德韶)

선사의 안목이 열린 것입니다. 질문한 납자는 같은 말로 보았지만

옆에 있던 선사에게는 같지않는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질문의 주인공은 그 납자가 아니라 덕소선사가 된 것입니다.

남의 입을 빌어 내 공부를 성취할 수 있는 것도 내 공부를 늘

성성하게 챙기고 있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조원(曹源), 조계의 근원이란 6조 혜능을 가르킵니다. 동시에

오가칠종(五家七宗)인 선종 전체를 말합니다. 일적수(一滴水)

즉 한 방울의 물이란 선종의 종지(宗旨)를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며 ‘불법의 적적대의(的的大意)’인

것입니다.

밀암함걸(密庵咸傑)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조계의 근원이 되는 한 방울의 물이란 어떤 것입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습니다.
“화시합뇨(和屎合尿)로다.
똥에다 오줌을 섞었구나.”
이렇게 ‘일적수’에 대한 안목은 선사마다 달랐던 것입니다. 

원오극근(圓悟克勤)선사는 천언(千言)의 글을 읽고 외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병이 들었습니다. 죽음 앞에

천만권 경전말씀도 선사에게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그 동안의 공부를 되돌아보며 길게 장탄식을

했습니다. 
“제불(諸佛)의 열반정로(涅槃正路)는 문구(文句)에 있는 것이

아닌데, 이제까지 나는 부질없이 색성(色聲)이나 구했구나.”
천우신조(天佑神助)로 몸이 회복된 후에 진각(眞覺)선사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하여 불법의 대의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진각선사는

자신의 팔을 칼로 찔러 피를 흘리면서 “이것이 조계의 일적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재발심하였고 이후 제대로 된

참선공부법으로 제방의 선지식을 두루 참방하다가 마침내

오조법연(五祖法演) 선사 문하에서 깨침을 얻었습니다.

조원(曹源)의 일적수(一滴水)는 그 어디에도 고금의 탁한 빛깔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조주선사는 그 물로 늘 차를 끓여 드셨습니다.

그 한 방울은 삼라만상을 다만 높낮이에 따라 그대로 비출 뿐이며,

기울었거나 바르지 못한 것들도 모두 있는 그대로 비추기 때문에

한암(寒巖)선사는 그 물에 달을 담아놓고 늘 살폈던 것입니다.

맑게 어울리니 달과 더불어 모든 세계를 머금었고, 또 때에 따라

깨끗하게 번뇌의 티끌을 씻어주는 까닭입니다. 일적수는 밤낮으로

그침없이 흐르며, 모든 것을 두루 윤택하게 적시면서 끝없이

바다로 흘러 들어갑니다. 조계의 물 한방울은 보통의 물줄기와

달라서 바다로 흘러들어 세상전체를 덮습니다. 일적수(一滴水)가

곧 천지일배(天地一杯)인 것입니다.

어쨋거나 ‘조계의 물 한방울’을 물었는데 ‘바로 조계의 물 한방울’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질문한 말과 대답한 말에 덧붙이거나 덜어낸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깨달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에 기인한 것인지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묘한 도리가 그 문답 속에 있습니다. 모든

언구에 대하여 어떠한 번뇌도 끊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범부들은

언구 속에서 조사의 마음을 읽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머리는

동쪽으로 가고자 하면서 두발은 서쪽으로 가고 있는 격이라고 할

것입니다. 메추라기와 참새는 ‘조원일적수’에 대하여 부질없이

재잘대지만 재빠른 준마는 벌써 천리 밖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조계일적수’를 문익선사와 천태덕소 시절의 문답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이 바로 사구(死句)가 됩니다. 이것은 밀암회상의 문답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서 결제한 대중의 문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덕소요, 내가 밀암이 되었을 때 비로소 ‘조계일적수’는 활구(活句)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결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대로 된 결제의 여부는 시작할 때가 아니라 마칠

때가 되어야 비로소 스스로 알 수 있는 까닭입니다. 

일적수를 물었는데 일적수라고 답한 낙처(落處)가 어느 곳에 있습니까?

득인일우(得人一牛)에
환인일마(還人一馬)로다
소 한 마리를 얻은 사람이
말 한 마리로 되갚는구나.

 

<주장자(柱杖子)를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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