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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스님 법문

제목 정유년 하안거 해제 법어
작성일 2017-09-02 조회수 621 작성자 원당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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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丁酉年 夏安居 解制 法語

                                                                     海印叢林 方丈 碧山源覺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柱杖子)를 세 번 치시고>


법원재세간(法元在世間)이요
어세출세간(於世出世間)이라   

출세간법은 원래 세간에 있나니
세간에서 세간을 벗어나야 하느니라    

육조혜능(六祖慧能)선사의 말씀처럼 세간법과 출세간법은 둘이 아닙니다.
육조스님은 세간에 있으면서도 세간을 벗어나야 한다는 이치를 이렇게
단경(壇經)에서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본분 상에서 말하자면 결제가 곧 해제이고 해제가 곧 결제입니다.
결제할 줄 아는 자가 해제할 줄도 압니다.
만약 결제와 해제가 둘이 아닌 도리를 깨닫는다면 범부를 초월하여 성인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不二의 도리인가?

해가 서쪽에 지니 달은 동쪽에서 뜨는구나.


하택신회(荷澤神會)선사는 ‘세간이 있어야 부처도 있고 세간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고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해제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결국
결제공부도 제대로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해제 살림살이를 통해
결제공부가 몇 근이나 되는지 제대로 드러나는 것 입니다. 

여래십호 가운데 세간해(世間解)라는 명호가 있습니다.  세간의 모든 것을
잘 안다는 뜻입니다. 세간이란 오온(五蘊)을 말합니다. 색(色)은 모였다가

흩어지는 속성을, 수(受)는 물거품과 같은 속성을, 상(想)은 아지랑이와 같은
속성을, 행(行)은 부평초와 같은 속성을, 식(識)은 허깨비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말하자면 공(空)이 세간의 본성이라 할 것입니다.

또, 세간이란 오욕(五慾)이며 해(解)란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세간이란 연꽃을 가르치며 해(解)란 물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간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깨닫는 것 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을 제대로 교화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춘다는 의미까지 포함 됩니다. 

그래서 결제의 공부지혜는 해제 때 더욱 빛나는 법입니다.  

약산유엄(藥山惟儼)선사는 천황도오(天皇道悟) 운암담성(雲巖曇晟) 그리고
고사미(高沙彌)와 함께 해제 때 만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산길에서 무성한 나무와 마른나무를 동시에 만났습니다. 
이에 약산선사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른 것이 옳은가? 무성한 것이 옳은가?”
운암이 말했습니다.
“무성해야 옳습니다.”
도오가 말했습니다.
“마른 것이 옳습니다.”
고사미가 말했습니다.
“마른 것은 마르게 두고 무성한 것은 무성하게 두어야 합니다.”
이에 약산선사는 3가지 답변을 “모두 틀렸다”라고 한 마디로 일축한 것

입니다. 

마른 것은 결제법이요 무성한 것은 해제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결제 법은

덜어내는 공부이니 마를수록 좋고 해제 법은 더하는 공부이니 무성할수록

좋습니다.  마른 것은 출세간법이고 무성한 것은 세간법입니다. 따라서

마른 법을 써야할 때는 가차 없이 마른 법을 쓰고 무성한 법을 사용할 때는

과감하게 무성한 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절집에서 오래 머물렀던 

운암과 담성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간법과 출세간법으로 나누는데 익숙했지만, 절에 온지 얼마
안된 어린 사미는 아직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나눌 줄 몰랐던 것입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나눌 줄 모르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나눌 줄 알아야 하며,

나눌 줄 안 뒤에는 다시 불이 법(不二法)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공부과정인 것입니다.

해제 결제가 무엇인지 모르다가 결제 해제를 알게 되고, 다시 해제가 곧 결제고

결제가 곧 해제임을 아는 도리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산은 산

물은 물’입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상태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난 뒤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경지가 나타나는

법입니다. 사미가 첫 번째 단계인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한 ‘마른 것은

마르게 두고 무성한 것은 무성하게 두어야 한다.’는 답변이 아니라 공부를 해

마친 상태에서 “마른 것은 마르게 두고 무성한 것은 무성하게 두어야 한다.”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답변이지만, 모르고
보면 별다른 차이가 없으나 알고 보면 하늘과 땅만큼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공부인은 세간에 머물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세간에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며, 세간 그대로도 아니고 세간을 벗어나지도 않으며, 항상 모든 불법을
실천하면서도 모든 세간의 일에도 힘을 쏟으며, 세간의 흐름을 따르지도 않지만

법의 흐름에 머물지도 않는 것입니다. 세간과 출세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를 깨닫기 이전에는 어디에 있더라도 그곳은 세간이며, 도를
깨달은 이후에는 어디에 있더라도 그것은 출세간인 것입니다. 그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안목의 문제인 것입니다. 

해제법과 결제법이 같다거나 세간법과 출세간법이 같다는 것은 고사미(高沙彌)

정도만 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며, 또한 운암과  도오같은 묵은
납자들도 할 수 있는 말이며, 대선장(大禪匠)인 약산선사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같은 말이라고 할지라도 같은 경지에서 나온 말은 아닌
것입니다. 어느 경지에서 그 말을 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원오극근(?悟克勤)
선사는 “불법즉세법(佛法卽是世法) 세법즉불법(世法卽是佛法) 불법이 세간법이고

세간법이 곧 불법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도리가 확연하게 되면
해제 길은 비로소 또 다른 결제 길이 될 것입니다.

불법즉세법(佛法卽世法)이니
기가간시제비야(豈可揀是除非耶)며
세법즉불법(世法卽佛法)이니
영수척속숭진야(寧須斥俗崇眞耶)리오

불법 그대로 세간법이거늘
어찌 옳은 것을 가려내고 그른 것을 제거 하겠는가?
세간법 그대로 불법이거늘
어찌 속계(俗界)을 배척하고 진계(眞界)만을 숭상하겠는가?
 

<주장자(柱杖子)를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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