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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유년 동안거 반결제 법어
작성일 2018-02-23 조회수 917 작성자 원당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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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동안거 반결제 법어

 

丁酉年 冬安居 半結制 法語

 

 

해인총림 방장 벽산 원각 대종사

海印叢林 方丈 碧山 源覺 大宗師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柱杖子를 세 번 치시고

 

풍래소죽風來疎竹이라도, 바람이 대숲에 불어도.

풍과이죽불유성風過而竹不留聲이요. 지난 후엔 대나무에 그 소리 남지않고

안도한담雁度寒潭하여도, 기러기가 찬 못 위에 지나가도,

안거이담불류영 雁去而潭不留影이로다. 연못에 그림자가 남지 않음이로다.

 

항주 보은사 혜명慧明 선사가 결제 때 찾아온 두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왔는가?”

도성都城에서 왔습니다.”

납자가 도성을 떠나 이 산으로 오면 도성에는 납자가 모자라고, 이 산에는

납자가 남는다. 남으면 마음 밖에 있고 모자라면 마음 법이 두루 하지 못한다. 이 도리를 말한다면 여기에서 살아도 좋거니와 말하지 못하겠거든 여기를 떠나라.“

 

혜명 선사는 잉소剩少, 즉 모자람과 남음이라는 양변 위에서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하여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을 수 있으려면 중도中道에 대한

안목을 갖추고 있어야 가능 합니다.

 

낭야혜각 선사도 시중示衆하여 중도법문을 말했습니다.

진전즉사進前卽死하고 앞으로 나가면 죽고

퇴후즉망退後卽亡이라. 뒤로 물러나면 멸망한다.

부진불퇴不進不退하면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는다면

낙무사지향落無事之鄕이니라. 무사지향 즉 일 없는 고을에 떨어진다.

어째서 그러한가?”

선사가 던진 질문에 대하여 결제대중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러자 당신이

직접 착어着語했습니다.

 

장안長安이 수락雖落이나 장안이 비록 좋으나

불시구거不是久居로다. 오래 살 곳은 못되느니라.

앞으로 나간다는 것은 남의 지시를 받는 것이요, 뒤로 물러선다는 것은 방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는다는 것은 중도법을 말합니다. 중도가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중도에 집착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제3의 한 변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커다란 병통이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조계종 중흥조인 고려 말 태고보우 국사는 이변구부주二邊俱不住 중도역하안中道亦何安. 양끝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리니 중도엔들 어찌 안주하랴.”라고 했던 것입니다.

 

송나라 초기에 활동했던 낭야혜각 선사는 그 중도법을 장안에 비유했습니다. 장안은 당나라 수도입니다. 동서문화의 중심도시로 당시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심지어 멀리 서역 사람들에게도 이상향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안성리임한유長安城裏任閑遊 장안성 안에서 한가히 노닌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선종집안에서는 장안성리長安城裏 깨달음의 경계,에 비유하였습니다. 즉 깨달은 뒤 유유자적한다는 뜻으로 사용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낭야 선사는 장안불구거長安不久居, 라고 했습니다. 설사 아무리 좋은 장안이라고 할지라도 해도 오래 머물게 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히려 도시의 악풍에 물들게 되므로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 것입니다. 즉 어떤 공부경지가 나타났다고 하여 그것이 끝인 줄 알고 수행을 멈추게 되면 결국 그것은 병통이 된다는 뜻입니다. 종문宗門에서는 장안을 본가향本家鄕, 안주처安住處, 보처寶處 등의 의미로 새겼습니다. 설사 본향本鄕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마저 집착하는 것을 떠났을 때 비로소 진정한 본향이 된다는 법문입니다.

 

낭야혜각선사는 임제문하로 분양선소汾陽善昭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당시 운문종 설두중현雪竇重顯 선사와 함께 2대 감로문甘露門으로 불리었습니다. 특히 도위都尉벼슬을 하고 있던 이화문李和文 거사가 <신심명>의 주석을 부탁하자 첫 구절인 지도무난 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唯嫌揀澤이니단막증애但寞憎愛 하면 통연명백洞然明白하리라.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라는 네 문장은 크게 쓰고 그 밑에 작은글씨로 나머지 본문을 전부

주석으로 처리하여 천고의 명주석이라는 평가를 남긴 대선지식입니다.<능엄경 장수소>를 남긴 화엄종 장수자선長水子璿 스님이 낭야혜각 선사를 참학한 후 깨달음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공부가 어렵다는 생각을 낼까봐 대혜종고大慧宗고 선사는 후학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스스로 퇴굴심을 내어 근기와 성품이 비굴하고 용렬하다고 하면서 다시 입문할 곳(入頭處)을 찾는다면 바로 함원전含元殿에 있으면서 장안이 어느 곳에 있는가를 묻는 사람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경복궁 안에서 서울이 어디냐고 묻거나 장격각 안에서 팔만대장경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은 정유년 동안거 반살림 날입니다. 벌써 반결제가 되었습니다. 해인사는 1967년 총림 개설이래로 산중대중들이 참여해서 안거 때마다 일주일간 용맹정진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납월 초하루 새벽에 시작해서 납월 팔일 새벽에 회향하게 됩니다.

 

장안대도 직여현長安大道 直如絃`이라고 했습니다. 장안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나 직진 길입니다. 결제대중에게 직진 길이란 바로 화두가 간절하면 용맹정진 일주일이 간절한 것이고 일주일이 간절하다면 성도절 새벽에 계명성을 황면노자처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스님들께서도 이 공부는 애써하고 간절히 하는데서 까닭이 생긴다하고 일주일만 공부를 제대로 하면 이 공부를 마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황벽 스님 게송에,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相이니, 진로에 벗어나는 일이 예사 일이 아니니,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어다. 간히 식심머리를 잡아서 한마당 지을지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번寒徹骨이면, 이 한번뒤쳐 차가운것이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어찌 매화의 향기가 코에 다침을 얻으리오.

수미정상무근초須彌頂上無根草는 수미산 꼭대기 뿌리 없는 풀은

불수춘풍화자개不受春風花自開로다. 봄바람 아니라도 꽃은 활짝 피었네

 

<주장자柱杖子를 한 번 치사고 하좌下座하시다>

 

 

2562(2018)무술년戊戌年 원단元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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